라이프·트렌드 · 조선 왕실 랭킹

조선 왕비를 가장 많이 낸 가문은? 본관별 왕비 수 TOP 9 (37명 직접 집계)

조선 임금 27명의 왕비 가운데 살아서 왕비 자리에 오른 37명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항목으로 하나하나 확인해 본관별로 세었습니다. 왕비를 두 명 이상 낸 아홉 가문과 대표 왕비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게시 9가지 정리

조선 왕비를 가장 많이 낸 가문 — 대표 그림
그림은 A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영상으로 보기

재생 버튼을 누르면 그때 YouTube(youtube-nocookie.com)에서 영상을 불러옵니다.

조선 오백 년 동안 왕비를 가장 많이 낸 집안은 어디일까요? 누가 더 아름다웠는지는 기록으로 잴 수 없지만, 몇 명이 왕비가 됐는지는 셀 수 있죠. 조선 임금 스물일곱 명의 왕비 가운데, 살아서 왕비에 오른 서른일곱 명의 본관을 모두 세어 봤습니다. 쫓겨난 왕비도 넣었고, 나중에 왕비로 높여진 추존 왕비는 따로 셌어요. 두 명 이상 낸 아홉 가문을 만나 볼게요.

1파평 윤씨

1위 · 본관 파평4명

파평 윤씨 — 그림

단독 1위는 파평 윤씨입니다.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 그리고 중종의 두 계비 장경왕후와 문정왕후까지 모두 네 명이에요. 정희왕후는 열세 살에 즉위한 손자 성종을 대신해 7년 동안 나라를 돌봤죠. 또 중종은 어머니 정현왕후와 두 번째, 세 번째 왕비가 모두 파평 윤씨였는데, 같은 집안 외척끼리 인종 쪽 대윤과 명종 쪽 소윤으로 갈라져 크게 다투기도 했습니다.

  • 세조·성종·중종 대 왕비 4명
  • 중종 어머니와 두 계비 모두 윤씨

2청주 한씨

공동 2위 · 본관 청주3명

청주 한씨 — 그림

공동 2위 청주 한씨입니다.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 성종의 첫 왕비 공혜왕후, 인조의 왕비 인열왕후까지 세 명이에요. 여기에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 세자빈일 때 세상을 떠난 예종의 첫 부인 장순왕후처럼 나중에 왕비로 높여진 두 명을 더하면 다섯 명으로 가장 많아집니다. 게다가 장순왕후와 공혜왕후는 한명회의 두 딸로, 언니는 예종의 세자빈이 되고 동생은 예종의 조카인 성종의 왕비가 됐답니다.

  • 추존 왕비까지 세면 5명, 1위
  • 한명회의 두 딸: 장순·공혜왕후

3여흥 민씨

공동 2위 · 본관 여흥3명

여흥 민씨 — 그림

역시 공동 2위인 여흥 민씨입니다. 왕자의 난 때 남편 이방원을 도운 태종비 원경왕후, 쫓겨났다가 5년 만에 다시 왕비로 돌아온 숙종비 인현왕후, 그리고 고종비 명성황후예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명성황후를 여흥 민씨가 낸 세 번째 조선 왕비라고 소개합니다. 인현왕후가 쫓겨나 지내던 친정집 감고당에는 훗날 명성황후가 잠시 머물기도 했어요.

  • 왕자의 난 때 남편 도운 원경왕후
  • 명성황후는 여흥 민씨 세 번째 왕비

4경주 김씨

공동 2위 · 본관 경주3명

경주 김씨 — 그림

공동 2위 경주 김씨입니다. 정종의 왕비 정안왕후, 숙종의 계비 인원왕후,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까지 세 명이에요. 인원왕후는 연잉군, 곧 훗날의 영조를 후계자로 지목했고, 열다섯 살에 왕비가 된 정순왕후는 열한 살에 즉위한 순조를 대신해 수렴청정을 했습니다. 이때 만든 규칙은 그 뒤 수렴청정의 지침이 되기도 했어요. 두 사람 모두 왕실의 가장 큰 어른으로서 나라의 큰일을 결정했던 셈이죠.

  • 인원왕후: 영조를 후계자로 지목
  • 정순왕후: 순조 대신 수렴청정

5안동 김씨

공동 2위 · 본관 안동3명

안동 김씨 — 그림

공동 2위 안동 김씨입니다. 순조비 순원왕후, 헌종비 효현왕후, 철종비 철인왕후로, 순조부터 철종까지 세 임금이 연달아 안동 김씨 왕비를 맞았어요. 철종을 왕으로 세우고 수렴청정까지 한 순원왕후가 가까운 친척인 김문근의 딸을 철종의 왕비로 들이면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는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왕비 자리가 곧 집안의 힘이 되었던 거죠.

  • 순조·헌종·철종 3대 연속
  • 세도정치의 절정

6청송 심씨

공동 6위 · 본관 청송2명

청송 심씨 — 그림

공동 6위 청송 심씨입니다.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와 명종의 왕비 인순왕후, 두 명이에요. 소헌왕후는 아버지 심온이 역모의 우두머리로 몰려 목숨을 잃는 바람에 폐비 논의까지 나왔지만, 내조의 공을 인정받아 자리를 지켰습니다. 인순왕후의 아버지는 바로 그 심온의 6대손이었어요. 세자빈일 때 세상을 떠나 나중에 왕비로 높여진 경종의 첫 부인 단의왕후까지 더하면 세 명이 됩니다.

  • 폐비 위기 넘긴 세종비 소헌왕후
  • 인순왕후: 심온 6대손의 딸

7거창 신씨

공동 6위 · 본관 거창2명

거창 신씨 — 그림

공동 6위 거창 신씨입니다. 연산군의 왕비 신씨와 중종의 첫 왕비 단경왕후, 두 사람은 고모와 조카 사이였어요. 1506년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쫓겨나면서 고모는 왕비 자리를 잃었고, 조카는 반정에 반대한 아버지 신수근이 죽임을 당한 탓에, 왕비에 오른 지 얼마 안 돼 공신들의 압력으로 물러나야 했습니다. 단경왕후는 2백여 년이 지난 1739년에야 왕비로 복위됐어요.

  • 고모와 조카, 둘 다 폐위
  • 단경왕후 1739년 복위

8반남 박씨

공동 6위 · 본관 반남2명

반남 박씨 — 그림

공동 6위 반남 박씨입니다. 인종의 왕비 인성왕후와 선조의 왕비 의인왕후예요. 인성왕후는 열한 살에 세자빈이 되어 20년을 기다린 끝에 왕비가 됐지만, 이듬해 인종이 세상을 떠나 왕대비로 서른 해 넘게 살았어요. 의인왕후는 임진왜란 때 선조와 떨어져 세자 광해군과 함께 피란길을 다녔습니다. 두 왕비 모두 자녀를 두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공통점도 있어요.

  • 인성왕후: 세자빈 20년 끝에 왕비
  • 의인왕후: 광해군과 함께 피란

9청풍 김씨

공동 6위 · 본관 청풍2명

청풍 김씨 — 그림

공동 6위 청풍 김씨입니다. 현종의 왕비 명성왕후와 정조의 왕비 효의왕후예요. 숙종의 어머니인 명성왕후는 고종비 명성황후와 이름 소리는 같지만 한자가 다른 사람인데, 숙종이 천연두를 앓자 날마다 찬물로 몸을 씻으며 낫기를 빌다 병을 얻었다고 해요. 효의왕후는 시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지극정성으로 모셨고, 궁궐 재물을 친정에 사사로이 내린 적이 없을 만큼 검소했답니다.

  • 명성왕후(明聖) ≠ 명성황후(明成)
  • 효의왕후: 검소했던 정조비

정리

아홉 가문을 한눈에 모았습니다. 살아서 왕비가 된 서른일곱 명은 모두 스물두 개 본관에서 나왔고, 그 가운데 열세 본관은 딱 한 명씩만 냈어요. 성씨로만 보면 김씨가 열 명으로 가장 많지만, 경주·안동·청풍·연안·광산, 다섯 본관으로 나뉘어 있었답니다. 추존 왕비까지 세면 청주 한씨가 1위가 되니, 순위는 세는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한 장으로 저장하기

이미지를 길게 누르거나 오른쪽 버튼으로 저장해 두고 필요할 때 꺼내 보세요.

조선 왕비를 가장 많이 낸 가문은? 본관별 왕비 수 TOP 9 (37명 직접 집계) — 한 장 정리 이미지

출처와 안내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왕비·인물 항목 · 기준: 조선 임금 27명의 왕비 가운데 살아서 왕비(황후)에 오른 37명, 폐위·강등 포함, 추존 왕비 제외 · 마케팅 그룹 1CC 직접 집계 · 그림은 실존 인물을 재현하지 않았습니다

그림은 AI로 만든 이미지이고, 영상 내레이션은 AI 음성입니다. 내용이 사실과 다른 곳을 발견하셨다면 문의·정정 요청으로 알려 주세요.

라이프·트렌드 전체

이 페이지의 구성